안녕하세요 유튜버 살색의 박감독입니다.
구글을 좀 살펴보니 살색의 박감독 나무위키로 검색하시는 분이 몇 분 계셔서 제가 왜 일본에 왔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셀프 글을 작성합니다....ㅎ 과연 누가 이런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왜 제가 일본에서 아득바득 일본여배우들과 힘들게 촬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지 저의 인생을 공개합니다 ㅋㅋ
잠깐 본론에 들어가기전에..
이 글은 상당히 깁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생이 경제적으로 항상 힘들어서 알바하느라 엄청 바쁘고 하루먹기살기바쁜 젊은날들을 보냈기때문에 자기계발 할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년단위로 아주길게 아주천천히 차츰차츰..영상제작을 해야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15년정도에 걸쳐서 일어났던것같아요... 정말신기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만드는일을 계속 포기하지않고 해왔던게 다행이기도 하고 지금 뒤돌아 보니 그게 신기해서 적는 포스팅이기도 합니다.ㅎ
먼저 저는 1986년 2월 어느 날 하남시 덕풍동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말의 따르면 오후쯤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ㅋㅋ. 1남 2녀 5 식구의 가정으로, 응답하라 1988에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그러한 집에 경제적 환경이 썩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절실한 종교집안으로 엄청 보수적인 생각과 생활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국민학교와 그리고 중학교 1년까지 하남시에서 살았는데, 집안이 너무 보수적인 나머지 학교친구들을 거의 못 사귀고 귀가를 해지기 전에 무조건 해야 하는.. 친구도 거의 없는 그냥 무미건조한 그림자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시는데 솔직히 저는 과장을 보태서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고 소심했던 저의 성격 탓에 ㅎㅎ..
그런데 딱한 가지 잘하는 게 있었는데, 국민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어요. 왼손잡이였는데 그냥 타고났던 것 같네요. 그런데 미술학원도 집에서는 보내주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했지만....ㅎ 아무튼.
그리고 중학교1학년 여름쯤인가, 경기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요. 그때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공부를 잘할 거 같다고 친하게 지내자고 했던 게 엄청 충격적이고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었어요. 왜냐하면 친구도 없었기에 새로운 곳에서 다르게 대해주니까 뭐지? 했던 기억이 있네요 ㅋㅋㅋ 아무튼, 그래도 저는 그대로였기에 중학교~고등학교까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학교-집 만 병행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심지어 운동, 공부도 안 했어요. 우리 집이 독특해서 그런지 그냥 편하게 지내면 되지~ 이러한 독특한 가정환경이었어요. 그런데 너무나도 무의미한 시간이 흘렀죠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학생이 우리 반으로 왔는데, 상당히 깨어있고 영리한 친구였어요. 어느 정도로 영리했냐면 그 당시에 2000년도일 거예요, 퀸이라는 가수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였고, 남자는 무조건 공부해서 성공해야 와이프가 예뻐진다(지금의 앤드류 테이트 느낌), 등등 뭔가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는 영리한 친구였습니다. 결국에는 법학과를 간걸로 알고 있어요. 아무튼 저는 그때도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전학생이랑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내 옆자리가 비어서 앉게 되었던가? 그랬네요. 그런데 그 친구의 영향으로 학교 끝나고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가 신의 한 수였는데요. 왜냐하면 고2 때 전학생과 친하게 지낸 영향으로 고2때 성적이 좋았습니다. 고2 때만...ㅋㅋㅋ 그리고. 고2성적으로 수시를 넣게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소방학과 의료시스템과였나? 디자인과도 넣었는데 전문대 그냥 2학년 성적등급으로 비빌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학과로 해서 넣었는데 다른 곳은 다 떨어지고 우연히 인덕전문대 디자인멀티미디어과에 합격하게 됩니다. 수시로...ㅋㅋ 근데 저는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우연히 인덕대 디자인과에 붙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죠.
2004년 인덕전문대 디자인멀티미디어과 입학.. 학창 시절까지 20년간 그냥 갇힌삶을 살았었는데 또 새로운 환경 인물들을 만나니까 엄청 자극이 되더라고요. 물론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를 조금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마음에 피시방 야간알바를 하고있었기 때문에 학교수업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과제만 겨우겨우 내는 정도였어요. 실제로 거기서 한 누나를 짝사랑하기도 했네요 지금 생각해도면 진짜 ㅄ같았어요.ㅋㅋㅋㅋㅋ 근데 이상히 도 반 여자들이랑 엄청 친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거기서 뭔가 숨어 꿈들 거리는 재능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 여자선배가 친하게 다가오면서 너 뭐냐는 동기들도 있었는데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죠. 아무튼 그런데 거기서 어떤 이상한 교수님이 방학숙제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오라는 거였어요. 그 당시에는 엄청 또라이같은 숙제였거든요? 2004년이면 영상컨텐츠를 개인이 취미를 만드는사람도 없고 완전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을 데리고 그냥 찍었었는데 그당시 엄청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아마도 소니 베가스를 다운로드하여서 겨우겨우 컷편집만 해서 제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05년..
그 당시에도 가정환경이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았어요. 1학년 1학기 학비는 겨우 냈는데, 2학기 학비낼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2월생으로 빠른 생일이라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휴학한 상태로 대학을 포기합니다.... 여기서 엄청난 좌절감과 집에 대한 원망이 강했던 기억이 나네요. 반항기가 올뻔한..ㅎㅎ
그리고, 그때부터 각종알바와 막노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쇼핑몰창고 에어컨설치 몰탈 건축현장안전요원 피시방야간알바 주유소알바 호프집 뭐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아요 거기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별의별인간들 사고방식이 있고 세상은 넓고 미친놈도 많고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느끼게 돼요. ㅋㅋ 학창 시절 너무 우물 안 개구리여서 진짜로 새로 경험할 때마다 충격적이었거든요. 그때 알바하던곳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나이먹고 저렇게 살아야하나 이렇게 포기하고 끝낼수 없다고 강한 분노감 같은게 올라왔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도 생각나는데 남양주의 어떤 건축현장에서 주황색옷을입고 심야 안전요원을 할때였어요. 안전요원의 특성상 건축현장의 작업자 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안전점검도 하고 체크를 하는데요,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데 그당시 30대정도의 작업자 분이였는데, 심야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냐고 단순히 인사차 말씀드렸는데, 지금 아이가 태어나서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고 지금하는일을 통해서 행복해 지고싶다고 웃으면서 하시더라구요. 거기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어요. 직업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싶은일을해야 저렇게 행복해지는구나... 라고 느끼게된 날이였어요 아직도 잊을수가 없네요~
그리고 얼마뒤 안 되겠다 싶어서, 네이버 검색창에 외국유학 자비유학 해외취업 등으로 검색을 해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딱 두 군데가 네이버 지식인에서 추천해 주더라고요. 호주유학과, 일본유학. 그런데 호주유학은 유학썰은 많아도 취업썰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일본유학은 알바 경험담부터 장학금 받는 법 그리고 취업한 썰이 그 당시에도 아주 많았어요.
그래서 이거다, 일본에 가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서 디자인학교를 입학해서 일본 도쿄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하자! 이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는 진짜 1도 관심 없었는데, 그냥 무작정 돈을 모으면서 유학원상담을 받기 시작합니다. 처음 상담받은 곳이 이치고이치에 유학원이었네요... 지금 검색해도 나오긴 하는데 15년 전의 그곳이랑 같은 곳이려나...ㅎㅎㅎㅎ
그래서 무작정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2008년쯤이 되었어요.
1500만 원을 그때 모았었던 거 같은데, 아마 그쯤 엔 환율이 미친 듯이 올라서...
일본기숙사 6개월치 납부, 일본어학교 6개월치 납부를 하고 항공티켓, 카시오 일본어 전자사 전등 등등 구매하고 나니 남은 돈이 40만 원이더라고요 ㅎㅎㅎ 와.. 이걸 환전하니 3만 엔인가? 나오더라구요. 달랑 3만엔 들고 2009년 10월 학기로 오게 됩니다. 신오오쿠보에 있는 엘리트 일본어 학교 였어요. 지금은 망해서 사라졌는데, 값이 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후진 학교였습니다...ㅎㅎㅎㅎ
http://www.sintokyo.com/school/elite.php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의 마인드가 엄청 따듯하고 친절하고 일본의 문화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이해시키려는 마음이 따듯한 분들이었습니다. 많은 학교를 다녀봤는데 아직 엘리트 일본어학교의 그 당시 선생님들의 표정과 따듯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네요~
2009년 10월 드디어 일본에 오게 됩니다. 와, 근데 비행기 탄 것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ㅋㅋ
막상 왔는데 완전히 적응도 못하고 몸살 걸리고 외국생활의 처절함과 저의 나약함을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 친구는커녕 알바도 제대로 못 구하고 학비를 못 버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신의 한 수가 2가지가 있었어요. 같은 반에 우연히 동갑내기 남자가 있었는데 아사히 신문 장학생으로 몸은 힘들지만 돈걱정 없이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더라구요. 저는 알바를 해서 도저히 학비와 생활비 월세를 다 벌기가 어렵다는걸 느끼고 그친구를 보고 2010년3월에 귀국해서 요미우리 신문장학생으로 다시와서 돈걱정없이 일본유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때부터 일본을 즐기게 되는데요. 돈을 안 모아도 되니까요? ㅎㅎ
그리고나서 얼마뒤에 또 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생깁니다.
2009년 7월쯤이었나.. 같은 반에 한국인 형이 있었는데 매일 클럽 가서 일본여자 꼬시는 형이 있었어요 ㅋㅋ
어느 날 카부키쵸 술집에 지금 당장 오라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왜냐고 했더니 이쁜 일본여자랑 있는데 여자가 2명이라고 한 명은 폭탄이라 네가 좀 처리해 줘라는 식의 연락이었습니다.ㅋㅋㅋ 어이상실. 아무튼 뭐 저는 친구도 없었기에 그냥 나갔습니다. 근데 그 형의 여자 친구는 진짜 미인이었어요. 아무로나미에가 좀 망한 느낌이랄까. 일본식 미인 ㅎㅎ 그리고 내 옆에는 그 친구의 친구가 있었는데 얼굴은 못생겼지만 그냥 뭐 사람으로서 괜찮아서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근데 저는 아직 일본어를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한마디 한마디 겨우 하는 정도 ㅋㅋㅋㅋ
근데 일본 여자들이 대단한 게, 제 옆의 일본친구가 막 취한 척을 하더니 저랑 러브호텔로 보내버리더라고요. 그렇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어이없이 사귀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은 아니고 솔직히 호기심으로 사귀었는데, 엄청 열정이 많은 일본친구였네요. ㅋㅋ 알고 보니 사이타마의 장애인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아주 가슴이 뜨거운 일본여자였어요. 일드 중에 고쿠센 있죠? 거기 여주인공이랑 거의 비슷합니다..
https://youtu.be/XQjJrZ3i2yo?si=XSMOt4Y9pyukl_-Q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항상 꿈을 쫓아가고 힘내야 한다고 응원해 주던 생각이 나네요. 힘들고 어려워도 꼭 하고 싶은 걸 하고 나아가라! ㅋㅋ 심지어 저는 일본어도 못하는데, 자기 친구들 결혼식 파티에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정말 놀랐네요. 주변친구들이 너 괜찮냐고 외국인이랑 어쩔 거냐고 놀리던 기억도 납니다 ㅋㅋㅋ 그런데 그 친구가 일드 루키즈를 추천하면서 꿈을 향해 가는 드라마니까 꼭 보라고 하더라고요. 루키즈 드라마는 고등학교 불량소년들이 가슴이 뜨거운 남자선생님을 통해서 인생을 꿈을 그리고 야구대회에 진출하는 청춘드라마입니다. 지금 제 인생 드라마는 루키즈이고, 인생 음악은 그린의 키세키입니다.
https://youtu.be/uKiy5 Bajl7 o
여자 친구가 너무 남자답고 열정적이었던 기억이 강하네요. 당시 일본여친이 귀국하기 전까지 많은 추억을 만들자며 그 당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차를 끌고 여행을 시켜줍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박이에요. 일본어도 잘모르고 일본물정도 모르는 그냥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서 귀국하기전에 추억을 만들어준다며 사이타마(한국으로 치면 남양주?)에서 도쿄로 차를 끌고 와서 도쿄근쿄 드라이브를 시켜줍니다...와..ㅎㅎ 첫 드라이브 1박 여행이 치바의 가모가와 씨월드였어요
https://www.kamogawa-seaworld.jp/korean/access/route/
도쿄남쪽 바다의 운치와 치바의 평화로운 길 그리고 수족관에서의 추억도 만들게 됩니다. 저는 조수석에 앉아만 있었네요 와 이런 여자 친구가 어딨 습니까 ㅋㅋㅋ (사진이 싸이월드에 많았는데 ...ㅠㅠ)
치바에 간 것만으로 일본은 다양한 문화와 마을이 있구나 하고 강하게 충격에 남습니다.ㅎㅎ
운전 거리가 엄청나거든요? 여기 수족관이 치바 제일 밑에 있어서 사이타마에서부터 달리면 200킬로 되려나??? 이 거리를 추억을 만들자면서 여행을 갑니다. 그리고 치바의 한적한 러브호텔에서 1박을 했네요 ㅎㅎ
그리고 저는 요미우리 신문장학생으로 다시 와야 했기에, 2010년 3월에 귀국날이 다가옵니다.
2월즘인가부터는 여자 친구가 계속 울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그 일본친구가, 갑자기 넷카페를 가자는 거예요. 아니 게임도 안 하고 영화는 영화관 가면 되는데 왜? 이랬더니 일단 가자는 겁니다. 아마도 귀국하기 2주 전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서 그냥 갔는데 갑자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더니 시디 한 장을 컴퓨터 시디드라이브에 넣더라고요
그리고 모니터에서 영상이 나오는데, 그동안 같이 들었던 드라마 루키즈의 주제곡 그린의 키세키와, 시미즈쇼타의 데뷔곡 키미가 스키 가 흘러나오면서 지금까지 촬영했던 화질구린 핸드폰 사진이 엄청 조잡한 슬라이드쇼로 약 10분간 영상이 흘러나왔어요. 아마도 가지고 있던 일본노트북에 사진앨범비디오 만들기~ 뭐 이런 소프트웨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컴맹 여친이 만들어봤자 얼마나 만들겠어? 하면서 웃으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영상자체는 엄청 촌스러웠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벅차지면서 엄청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걸 느꼈습니다... 강한 벅차오르는 충격적인 감동이 올라왔어요. 솔직히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여자는 아니었는데 정말 엄청난 경험이였어요!
여기서 또 한 번 강한 충격을 받아서 2010년 2월 그날... 저는 영상이라는 제작물이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몸소 느끼게 돼요. 디자이너 그림 이런 2D결과물은 단 1장인데 영상은 그 실제 공간을 실시간으로 입체적으로 기록해서 저장하고 편집이라는 기술로 그현장을 재구성해서 사람에게 보여주는 영상물은 엄청난 감동 그리고 파워가 있다는 걸 이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 만약 다음 여자친구가 생기면 추억 뮤비, 기념일 뮤비를 만들어서 이벤트를 해주고싶다고 결심하게 되요. 이것도 엄청난 계기가 되었네요
그렇게 귀국날이 다가오고, 2010년 3월 한국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한국에 가서 강남에 사무실이 있던 요미우리 신문장학생 한국센터와 연락해서 2011년 3월 학기로 잡고 약 1년간 한국에서 다시 막일을 하며 지내게 됩니다. 이때는 거의 뭐 아무것도 안 하고 막노동일만 해요. 그런데 가슴한쪽이 멍한 느낌이랄까요? 이별해서 그런가? ㅋㅋ 건축현장에서 안전요원을 했었는데 쉬는시간이나 야간근무할때 청량리백화점 건설현장 야외테라스인가요? 거기에 앉아서 하늘을 보면서 루키즈의 키세키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하루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루키즈의 키세키의 가사가 상당히 좋아요~ 버틸힘이 돼준 노래네요~
https://youtu.be/vT_2 Aa9 wiZ8
그리고 1년이 지나 2011년 3월이 옵니다. 일본은 4월학기로 입학하면 3월말에 입국하거든요 보통.. 그런데..
2011년 3월 11일은 일본 대지진이 있던 날입니다...
https://youtu.be/m0aVoX-eadQ?si=rI76Vqt7Waec7XQv
와 정말 인생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고 느낀 날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사람들 다 말리고 일본은 망해간다라는 분위기가 한국에 깔려있던 시절이라 다들 손가락질했죠. 그런데 2009년에 유학경험으로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넘어옵니다....ㅎㅎ
2011년부터 유학생활을 하게 되는데, 전일본여친에게 연락을 했으나 1년이란 시간이 길었던것인지 답장이 오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전여친과는 끝이나고...
신문을 밤낮으로 돌리면서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게됩니다. 두번째 여친이 롯봉기 인터컨티넨탈 호텔 데스크 여직원이였는데, 돈이 없던 저는 자전거를 타고 도쿄내 관광지를 돌면서 아이러브유 팻말을들고 촬영해서 짜집기 뮤비로 선물해줬습니다.ㅋㅋ 그당시 그여친분은 이게 뭐지? 하면서 독특한 감동을 받았던 표정이 기억납니다. 아마도 저만 엄청 즐거웠던 기억이 있네요.ㅎㅎ;;; 신문돌리면서 하루에 수면시간이 정말 짧았는데도 청춘을 태우는 느낌을 받았던것 같네요. ㅋㅋ;
근데 신문배달이 그렇게 엄청나게 힘든일인줄 몰랐어요
조간 석간 하루에 2번 돌리는데, 새벽2시에 일어나서 새벽5시까지돌리고 어학교 9시까지 갔다가, 다시 오후2시에 석간돌리면 저녁6시쯤됩니다. 이걸 무한반복....
그리고 2012년에는 전문학교를 입학해서, 웹디자인전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직까지 영상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그당시에는 아무도 하지않던 학교축제의 엔딩영상(그러니까 축제를 실시간으로 영상,사진 촬영해서 축제 마지막날에 무대에서 틀어서 학생들 감동주기)을 몇몇 일본친구들과 팀을꾸려서 제작을 해서 축제마지막날 갑자기 영상을 틀어주면, 헉 언제 이런영상이? 이러면서 감동받는 학생들의 표정에 엄청 저는 즐거웠습니다.
실제 영상이 아직 있습니다!!! 여기!! 2014년 학교축제 엔딩영상이네요 ㅎㅎ
http://blog.naver.com/p102602/220017208978
그리고 학교다니는중에 구글이 학생만을 대상으로한 유튜브 영상컨텐츠 대회를 추최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영상이면 꼭 참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영상을 간단히 만들었는데, 최우수상을 받아버립니다.. 아니, 그냥 대충 쓱싹 만들었는데 최우수상이라뇨.... 와 정말 신기했어요
그렇게 힘들었지만 웹디자인 공부는 안하고 영상만 취미로 만들다가 학교생활이 끝나가고있었어요..ㅋㅋㅋ..
2015년 취업활동을 웹디자이너로 지원하는데.. 6개월간 다 떨어집니다 ㅋㅋㅋㅋ 이것도 신의 한 수였어요. 아니 알바도 해야되서 사실 웹디자인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해서 떨어지는게 당연했던것같아요.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던 학교 선생님이, 영상을 좋아하면 영상편집 취업을 하는게 좋을텐데? 한마디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러고보니 그것도 그렇지만..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래도 박군의 학교생활을 우리가 잘알고있으니까 추천서를 써줄게 라고 하시는거에요 선생님이.. 추천서를 들고 지원을하였고 그래서 그때 당시에 핫한 일본의 유튜버가 처음으로 만든 회사인 앱뱅크에 선생님의 소개로 면접으로 보러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의외로 1방에 합격하여서 정말 뜬금없이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인턴쉽으로 일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정말 생각도 못한 전개였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 유튜브 플랫폼의 이미지는, 그냥 이제 막 시작한 듣보잡 플랫폼이었어요. 심지어 영상제작한다는 놈이 방송국이나 광고제작사가 아니라 유튜브 편집을 한다고?ㅉㅉ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유튜브가 이렇게 잘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죠. 2015년입니다 ㅎ
그래서 저의 유튜브 인생이 2015년부터 시작되었고, 손으로 하는 일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영상 전문학교를 가지도 않았음에도 잘 따라가면서 지금까지 유튜브를 이어오게 된 겁니다.....
그리고 멘탈이 약했던 저는, 유튜버의 회사에 입사한뒤 1년뒤 전직을 하게됩니다. 이때 좀 방황하는 시간이 오는데요 회사에 들어가서 상사를 위해서 남들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 받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졸업후 4년동안 전직을 5번이나 하게됩니다 ㅋㅋ;; 그러던중 취업하게된 회사가 SOD, 사쿠라마나, 코지마미나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브 사무실에 취업을 하게됩니다...
이때당시는 제가 유튜버고 살색의 박감독이고 상상도 못하고 하루하루 개빡세게 일만했었네요..
혼자 기획부터 편집까지 SOD, 사쿠라마나, 코지마미나미 채널 3개를 맡아서 돌리던 시절입니다. 그때의 땀이 지금의 저의 채널에 피가되고 살이 될줄은 정말 상상 조차 못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가 오고 재택을 하면서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해왔듯이 뭐하나 지푸라기있으면 계속 잡고 꾸준히 하다보니 이렇게 된것같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만남이 있고 포기하지 않는 저도 있었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이 생략한 부분이 있긴 한데 제가 왜 일본에 왔고 왜 여배우들과 유튜브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저의 배경을 적어보았습니다. 글이 무지하게 기네요. 여기까지가 제가 유튜브를 하게된 엄청나게 긴 이유였습니다..ㅎㅎ
그당시는 불행이였던일이, 그덕분에 좋은일로 연결되고,
일본에 와서는 만났던 사람들이 힘을주고 기회를 준경우가 많았던것같네요. 어떤상황이더라도 매사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하는 이유인것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유튜브 활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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